독서 기록 -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3탄 (빈 체제, 신 절대주의 그리고 제국 역사의 끝)

    셀프로 고통받는 미방

    원래 이 책 다 읽은지가 3주 전인데 

    컴활 1급 필기 공부한다고 미리 써둔 독서노트 발효시키는 수준으로 묵혀두고만 있다가 

    필기시험 붙어가지고 바로 싹 정리 시작함

     

    마지막 편이구용 

    제가 읽은 책은 바로 요거 

    책은 제 돈으로 안 샀고 협찬도 아니고 제 명의로 도서관에서 임시보호 했습니다.. 500페이지 넘고요.

     

     


     

     

    21장~ 24장

     

    이 챕터들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검열의 시대 라는 말이 맞을 거 같다.

    옆에 유럽나라들 다 뭐 민중혁명 일으키고 천부인권이네, 왕정 붕괴되네, 계몽주의네, 산업혁명이네 뭐네 정신이 없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한다는 생각이 '아 우리 합스부르크 가문을 위해서 절대로 왕권을 공고히 해야겠다!!!!' 같은 종류였을 거라고 강하게 추측했다.

     

     

     

     

    마리아 테레지아


    마리아 테레지아 시절부터, 혹은 그 전부터 검열이 있었다.

    주로 카톨릭 교회에서 성직자들이 했지만, 근대 사회로 진입해오면서 검열관의 역할은 황제와 관료들이 맡게 되었음

    테레지아 때는 약 5천종의 금서가 있었다고 함.

    지금 기준에야 '에엥 5천종~~~? 하지만 신에게는 아직 금지되지 않은 5만종이 있다!!' 라고 호기롭게 말하겠지만

    그때는 근대사회로 막 진입해가는 시기였구요, 지금 수준처럼 인쇄기술 발달한거 몇백년도 안되고요... 책도 누구나 읽었던 게 아니라 특권층만 읽는 것이었다는 것을 감안하자.

     

     

     

    요제프 2세

    요제프 2세는 검열을 상당부분 완화하여, 금서도 9백종 정도만 했고 언론 통제도 완화하여 다양한 관점의 신문이 창간되기도 한다. 토론이 활성화 된 것도 이때부터 라고 한다.
    반대로 극장에 대한 검열은 더 강화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햄릿, 피가로의 결혼 같은 작품들이 원작 그대로 오르지 못하게 되었음. 이걸 이 책에서 엄청 디스한다.

    그렇지만 요제프 2세는 본인이 실행한 개혁들이 실패하게 되자, 반대로 언론과 극장에 대한 검열을 강화함.
    규제의 수단으로 경찰을 활용하고, 경찰에게도 권력을 주면서 점차 경찰국가로 바뀌어 갔다고 한다.

     

     

     

     

    레오폴트 2세

    레오폴트 2세 (요제프 2세의 동생) 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합스부르크는 프로이센과 손을 잡고 프랑스에 군주정을 회복시키고자 프랑스를 압박한다.

     

     

     

    프란츠 2세 -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

    갑작스럽게 죽은 레오폴트 2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프란츠 2세가 왕위에 오른다. 그 다음해에 프랑스는 선전포고를 하는데, 그렇게 시작된 전쟁이 프랑스 혁명 전쟁이라고 한다.
    아까도 썼지만, 유럽 전역의 정부들은 프랑스 혁명으로 불거진 혁명적 정서가 진정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정권에 대한 비판까지도 혁명 시도로 간주하고 경찰을 통해 과도한 검열과 규제를 하게 된다.
    심지어 '정권 비판'이란 것도 다 따져보면 조작된 신고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프란츠 2세는 경찰 권한을 극대화 하게 되고, 결국 오스트리아에서는 검열을 피해 정치 토론이 아니라 문화 예술 분야의 고양을 나누는 살롱이 유행하게 된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 전쟁은 유럽 동맹의 패배로 결말이 났다. 합스부르크 왕가도 피해가 컸는데, 프란츠 2세도 결국 파산에 이른다. 계속 연이은 전쟁은 합스부르크 가문에 득이 된 것이 없었음.

    전쟁에서 이긴 나폴레옹은 1804년 파리에서 스스로 프랑스의 황제가 되는데, 프란츠 2세가 '오잉 프랑스가 저렇게 하니까 나도 질수 없징' 하면서 덩달아 오스트리아 황제로 즉위한다.
    내가 볼땐 진짜 꼴값같았지만 저자는 이를 "현명한 처사"라고 언급하는데, 2년 후 프랑스가 라인 동맹을 결성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하는 여러 소국들이 제국을 이탈해 버리기 때문임.
    그렇게 신성로마제국이 종말을 고했고, 이 시점 이후부터 오스트리아 황제로서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지된다. (물론 지금 오스트리아보다는 영토가 훨씬 넓음)

    신성로마제국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제국이 되었기 때문에 황제의 호칭도 바뀌게 된다. (프란츠 2세 -> 프란츠1세)

     

     

     

     

    메테르니히 후작

    책에서는 프란츠 2세(=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 때의 외무대신인 메테르니히를 중심으로 국제 정세에 대해 조망하기도 했다.

    메테르니히의 최대 공적은 프랑스 대사일 시절부터 눈팅하면서 프러 전쟁이 발발할 것을 예측하고, 숨죽여 지켜보다가, 러시아 편에 서서 프랑스군과 나폴레옹을 격퇴한 것이라고 보인다.

     

     

     

    빈 회의


    이후 메테르니히는 유럽의 새로운 주역이 되어 "빈 체제"를 이끈다.
    프러 전쟁의 실질적 승리자인 합스부르크 가문과 메테르니히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를 다시 복원함

     

     

     

     

    루이 18세

    그놈의 부르봉 왕가가 어디냐

    => 루이 어쩌고 서른마흔다섯세.. 거깁니다... 

    부르봉 왕가를 어떻게 복원시켰냐 

    => 나폴레옹 감옥보내고 루이 18세 찾아내서 프랑스 황제를 시킴 

     

    프러전쟁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대부분의 영토를 다시 되찾고, 유럽의 소국들도 다시 합가문의 지배하에 두었다.

    그리고 이 이후로 메테르니히는 프란츠 2세의 총신이 된 것으로 보임..
    메테르니히가 집권할 시절에는 해상 무역에 대해서도 진척이 있어, 동지중해 무역은 물론 남아프리카 까지 진출한다. 남아프리카의 경우 제조풍, 직물, 우산 같은 상품보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은화에 더 관심을 보였다고 언급되는데, 이 영향으로

    마리아 테레지아 탈러 은화


    '마리아 테레지아가 사망한 해를 기념하고자 만들어진
    "마리아 테레지아 탈러 은화"가 세계 이곳저곳에 유통되기 시작한다.

     

     

     

     

    1848년 혁명

    1848년 혁명에 관해 책에서는 필리프 폰 노이만이라는 외교관의 일기 기록을 따라 서술해 나간다. 저자에 의하면 노이만과 메테르니히는 외모까지도 판박이 같다고 한다. 그리고 폰 노이만이 그 유명한 과학자 그사람의 같은 가문 선조다(직계혈통은 아님). 

    그리고 구글링 해보니까 외국에서는 필리프 폰 노이만이 쓴 일기가 책으로 출간되어 있는데, 일기장을 쓴 본인보다도 이 일기장의 인기가 더 많은 것 같았다. 이유는 1848년 혁명 발발에 대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의 실시간으로 기록해놔서 인것으로 추측된다.

     

    빈 체제 이후 전 유럽에 강화된 "검열"과 “경찰 국가” 시스템이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들을 몰아세웠다. 정치세력이라고 하지만 지금처럼 국민들이 세력이 된게 아니고 이들도 다 같은 귀족임.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현 체제를 집권하는 귀족들에 대한 전복을 꿈꿀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이건 상류층/지배층에 대한 얘기일 뿐이고, 민중은 어땠냐... 1846년 갈리치아에서 소작농들이 지주들을 학살하는 유혈 폭동이 발생한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가문의 관료들은 서로 싸우기만 할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피지배층-노동자계급까지 함께 움직일 수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을 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1848년 2월 프랑스에서 다시 혁명이 발생하면서 중앙유럽에 1848년 혁명이 시작된다.
    같은 해 3월 프로이센에서 혁명이 발생하고, 며칠 지나지 많아 빈에서도 봉기가 일어난다.
    이 상황에서 웃긴게.. 메테르니히의 정적들은 이를 이용해 메테르니히를 내쫓고 싶어했고, 메테르니히는 어쩔 수 없이 런던으로 망명한다.

     

     

     

    빈디슈그래츠 장군 Windisch-Graetz

    (정확한 철자는 Windisch-Grätz 인데 ä를 쓰면 오류가 나서 급한대로 ㅎ)
    보헤미아에도 1848년 6월에 혁명이 발생하는데, 빈디슈그래츠 장군이 프라하를 둘러싸고 3일동안 포격하여 혁명대를 진압한다.

    헝가리에서는 아예 쿠데타가 발생했다. 헝가리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를 거부하는 상황이었는데, 빈디슈그래츠 장군 등등의 활약으로 최후에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에게 군사력으로 제압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크로아티아의 옐라치치 장군이 오스트리아 편을 들면서 결국 헝가리 정부가 붕괴된다. 

     

     

     

    요시프 옐라치치

    요시프 옐라치치는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주장한 장군으로 크로아티아에서는 영웅이다.

    근데 사실 주권 뺏고 지배하는 놈은 그놈이 그놈인데 왜 옐라치치와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 편을 들었냐...

    그건 크로아티아가 당시 헝가리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옐라치치는 독립을 선언했다는 이유로 잠시 오스트리아에게 미운털이 박힌다. 그럼에도 크로아티아는 1848년 혁명 당시 오스트리아 편에 줄을 잘 서서 헝가리 혁명을 진압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그 역할을 인정받은 덕에 잠시나마 크로아티아의 주권을 헝가리에서 뺏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1세 - 젊었을 때

    빈디슈그래츠와 다른 장군들의 영향으로 1848년 말 당시 황제였던 페르디난트 1세는 그의 조카인 프란츠 요제프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1849년 3월 프란츠 요제프는 3월 헌법을 강요하였다.

     

    <3월 헌법 주요 골자>

    1) 헝가리를 포함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단일 의회와 정부를 계획했으며(중앙집권적 성격),

    2) 선출직 기관들에 대한 권한 위임,

    3) 농노제 폐지 승인,

    4) 종교 및 언어의 자유와 법적 평등을 확정

     

    - 한 헌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프란츠 요제프가 독일 연방과의 합병과 나폴레옹 3세의 정치적 능력을 견제하고자 제정한 것이라는 식으로 언급된다.

    이러다 결국 1851년 실베스터 특허라고 명명된 명령을 발표하면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3월 헌법을 폐기해 버리고 10년간 독재를 했다. 소위 '신 절대주의 혹은 '신 전제정'의 시대였다. 당시 이걸 추진한 장관의 이름를 따 '바흐 절대주의'라고도 부른다고 함.

     

     

     

    알렉산더 바흐

    참고로 바흐라는 분은 메테르니히가 실각한 이후 주도권을 잡은 관료이기도 함

     

     

     

     

    엘리자베트 황후 - 시시

    잠시 책에서는 프란츠 요제프의 아내 “시시”(Sisi)에 대해 언급하는데, 저는 몰랐다가 독서노트 보완하면서 검색했다가 알게되었다.

    시시는 애칭이고, 원래 이름은 엘리자베트. 바이에른의 여공작이었다.
    시시 황후는 19세기 유럽 왕조의 여성들 중에 단연 유명한 사람이다. 어느정도냐면 이 사람의 인생을 뮤지컬로 만들었을 정도인데, 그게 우리나라에서도 공연하고 있는 <엘리자벳>이다.
    거기다 오스트리아 관광 가면 마리아 테레지아, 모차르트, 시시 이렇게 셋을 엄청 자주 접할 정도라고 하니...

     

     


    1) 아름다운 미모+발목까지 기른 머리카락+개미허리(책에서는 16.5인치를 유지했다고 써져있음)와

    2) 도피성 휴양여행,

    3) 그리고 헝가리와의 관계

    이렇게 세 키워드로 엘리자베트 황후를 설명할 수 있을것 같다.

     

    책에서는 일단 시시 황후 본인도 미모 가꾸는데에 몰두했다고 하지만 평소 식이조절이나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체육관에서 운동도 곧잘 하고 승마와 사냥을 즐겼다고. 그리고 담배를 엄청 피워대느라 식욕이 없기도 했을 거라고 한다 ㅎㅎㅎㅎㅋㅋㅋ
    거의 뭐 궁에서 생활하지 않고 여행만 주구장창 다녔는데 프란츠 요제프는 시시를 많이 사랑했지만 둘이 붙어있으면 또 엄청 싸워댔다고 한다... 저자는 ‘두 사람의 관계는 확실히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때 가장 좋았다’라고 써놨다 ㅎㅎㅎㅎㅎ
    시시 황후는 헝가리를 좋아했던것 같은데, 프란츠 요제프 1세가 헝가리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헝가리 내 유력 귀족들도 소개하고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저자는 시시 황후의 활약이 결정적이진 않았을 거라고는 한다지만, 애초에 헝가리에서 황제보다 황후 인기가 더 많았고 본인 글로도 헝가리에서 이례적이었던 부분도 있었다는데 역할을 그따위로 축소해서 언급하면...;; ㅎㅎㅎㅎㅎ

    아까 방금 쓴 내용만 봐도 헝가리에서 혁명+반란 일으켜서 오스트리아가 군사적으로 제압했다는 얘기였고요? ㅎㅎㅎㅎㅎ

    위키 검색하니 생애가 더 자세히 나와서 좋았는데, 여행만 하면서 나돌아다닌 이유가 시집살이가 심해서 였다고 한다. 바이에른에서 교육 제대로 못받았다고 뒤에서 까고다니고, 심지어 시시가 낳은 아이들 양육을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엄마와 누나가 했다고 하니 실제로는 어마무시하게 맘 고생 했을 듯.... ㅠㅠ 그 외에도 인생의 부침이 많은 편이긴 한데 특히 시시 황후 본인의 인생이 그렇다. 특히 마지막 최후가 너무 안타깝다.

    결론적으로는 1867년 오스트리아는 나라 이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변경해가면서 헝가리의 지위를 새롭게 했다.

     

     


     

     

    25장~29장


    다시 신 절대주의 기조 이야기로 돌아온다.

    오스트리아에서 새로운 절대주의는 관료들, 즉 공무원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래서 우편제도 정비, 철도 건설, 전신과 도로가 설치되고 지주제를 폐지하고 농노 해방을 추진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민법을 모든 나라에 일관되게 적용하기 어려웠던 상황에 대해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일절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점, 오스트리아를 도와 헝가리를 침공해준 러시아가 크림 전쟁을 일으키고 오스트리아의 도움을 요청했을때 전혀 지원하지도 않았던 점(영국이나 프랑스를 도운 것도 아님), 결국 독일 연맹을 잃은 점, 거기다가 농노 해방과 참정권 부여를 통해 중산층이 일으킨(사실은 전혀 아닌데, 프란츠 요제프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함;;) 민족주의를 누르려고 했다는 점 등등등은 결국 오스트리아에 부정적인 일들로 돌아왔다.

    프란츠 요제프는 자기 스스로를 "선택받은 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책에서 언급한다.
    하지만 프란츠 요제프는 군사적, 외교적 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인물이라 금새 국제적으로 고립되었고, 그의 치세에 있었던 절대주의로의 회귀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배양을 촉진해, 그게 다 본인에게로 돌아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지만 프란츠 요제프 1세가 1866년 이후 제국이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카톨릭에 대한 신심을 보여서, 동생과 아들, 부인까지 끔찍하게 죽고 다른 비극적인 사건들도 겪었기 때문에 “평화의 황제”, “슬픔의 사람”으로 종종 비유되어, 민족을 초월하는 관념의 상징이자 충성심의 초점이 되었다고 언급된다.

    점점 합스부르크 가문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시청을 떠나는 부부


    보스니아 민족주의자에 의해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그의 부인이 테러범에 의해 총살당한 것을 기점으로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되고, 이 전쟁으로 인해 합스부르크 제국은 결국 무너진다.

     


     


    책 다 읽고 난 후 개인적인 총평

     


    책의 제일 첫 부분에서 저자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이합체시를 언급한다.

     

     


    AEIOU 라는 문구이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만든 건축물 등등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이합체시의 정확한 문구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역사학자들이 해석하기로는

     

    Alles Erdrerch ist Österreich untertan.
    전 세계는(지상의 모든 제국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신하다.

     

    라는 뜻을 가졌다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1918년에 열망했지만. 그들의 흔적은 종교(특히 카톨릭), 건축양식, 그들 영토에 복속 되었던 곳들에서의 문명화 사업, 문화, 예술 그리고 학문적 발견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책의 저자는 말한다.

    또한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다민족 국가로서의 정체성, 즉 "보편성"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여러 부분이 모인 완전체로서도 통치하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은 자기네들이 지배하고 있던 민족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 개별적인 부분들에서의 통치자로서 작용하는 것도 마다할 수 없었다.

    - 근데 이거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를 이용한 부분이지 어떻게 보편성이 될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드네...
    그런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생존'해온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럽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실제로 여러 나라로 쪼개져 각자의 잘 통치를 해나가는 중앙 유럽의 상황이 과거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에 있을 때보다 더 악화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저자의 얼탱이 없는 평가를 마지막으로 .... 책이 끝난다.


    내가 저자의 마지막 말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저자조차 객관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이 책을 썼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임.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으니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세계대전 이후 개별 소국들로 찢어져 그 소국들이 알아서 살아가는 것들이 진짜 득인지 실인지, 엉망진창 와진창이었는지는 지금 동시대 사람들의 말까지 모두 포함해 후대가 평가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임.

    그리고 저자의 저 평가는 절대군주에 의한 군주정 - 특히 검열을 앞세워 통제하려고 했던 - 에 대한 옹호로 비춰져서 솔직히 진짜.. 좀.. 아닌것 같아욤... ㅎㅎㅎㅎㅎㅎㅎ 옛날옛적처럼 핏줄 타고났다는 한 사람에 의한 일방적 통치가 현재에도 적용이 되면 그건 걍 독재고요 ^^ 아저씨 그 저기 그런 나라가 중국하고 북한이라고, 이미 있네 있어 ㅎㅎㅎ

     

    갑자기 합스부르크 가문이 가장 빛났을 때는 카를 5세부터 페르디난트 1세 정도까지였겠구나.. 라는 생각을 뽝 했다. 그 이후로는 그냥 뭐... 이승에서 굴러도 똥밭이라고... 그럭저럭 명맥을 유지하긴 했고 심지어 어느 때는 갑자기 잘 해오기까지 했는데 결국 똘똘한 사람이 이끌어 나갔던 것이고, 정치력 까지도 아니고 그냥 운이 좋아서 잘 풀리기도 했겠지만 생존자들의 최후는 한순간에 찾아온다는 것, 그리고 그 최후에는 그동안 여러 세대를 거쳐 쌓아온 모든 업보가 다 폭발해 버린다는 것도 느꼈다.

    이건 어느나라나 다 똑같은것 같다. 

     

    그러니까 착하게 살자.

    누가 날 어떻게 평가할지 몰라~~ ㅋㅋㅋ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결정에 책임을 다하며 생존해 나가자.

     

    써놓고 나니 결론이 이상한데? ㅋㅋㅋㅋ

     

     

     

    참고한 위키피디아 링크는 더보기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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