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받은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를 봤습니다.
한국개봉때는 부제가 붙었는데 이게 참 불필요한 사족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합니다.
뭔가 .. 시카리오가 도시 이름이야? 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한국어 부제처럼 친절한 듯 불친절한 영화입니다.
영화 처음부분에 시카리오라는 말 뜻이 나오는데, 이게 이 영화 줄거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영자막을 그대로 직역해볼게요.
The word 'Sicario' comes from zealots of Jerusalem
시카리오라는 말은 예루살렘의 질럿에서 유래한 말로,
Killers who hunted the Romans who invaded their homeland
질럿은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을 침략한 로마인들을 사냥하던 킬러입니다.
In Mexico, 'Sicario' means hitman
멕시코에서 시카리오는 암살자라는 뜻입니다.
구글번역으로 조금만 두들겨보니 처음부터 굉장히 불친절한 안내였어요.
sicario 라는 말은 멕시코에서만 쓰이는게 아니라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 전반에서 쓰이는 단어고요.
단어가 어디에서 유래했느냐 하면 심지어 라틴어/이탈리아어입니다.
같은 단어가 발음만 다를 뿐 같은 뜻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속뜻 또한 동일하게 고용된 킬러, 즉 청부살인업자입니다.
왜 이 말이 이탈리아쪽에서 유래했다고 보느냐 -
우선 고대 로마시절 즈음 쓰이던 무기 중 하나가 sica라는 대거입니다.
칼 중간이 좀 휜듯한 건데 게임에서 많이 보이는 흔한 유형의 검입니다.
모양은 영문위키만 찾아봐도 쉽게 알수 있습니다.
-ario는 무슨 말이냐 하면 라틴어의 -arius에서 유래한 것으로
belonging to -에 속하는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답니다.
결론은 검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지만
얘네의 침략사를 잔잔히 살펴보면 또 쉽게 유추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나온 영자막에서도 알수 있듯이 고대 로마는 로마제국을 형성하여
지중해의 모든 국가를 자기네 밑으로 편입시킵니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었고요.
여러 역사기록과 심지어 성경에도 나와있듯이 유독 이스라엘이 로마에 대한 적개심이나 반항심이 대단했습니다.
사실 당연히.. 침략을 해온 사람들인데 좋게 보는 시선자체가 아이러니지만요.
그런 문화에서 태어난 것이 '질럿(zealot)'입니다. 영자막에서는 킬러라고 되어있지만,
찾아보니 유대인들 중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호전파/과격파 당원이나, 그들을 지원해주는 사람이란 뜻이었습니다. ( 출처3 )
지식인에 남아있던 예전 영문위키에서, 시카라는 검은 로마의 검투사들도 주로 사용하는 검이었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로마인 검투사보다 다른 피지배국가 출신의 검투사가 많았던 것을 떠올려보면
로마에 저항하는 당원에게 고용되었거나 유대인 검투사들이 당의 뜻에 따라 직접 로마인 주인들을 암살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칭할 때 zealot, sicario라고 부르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여기까지는 제 사견이고 실제로는 어떻게 유래됐는지 언어학자가 아닌 이상 알 길은 없습니다.
▲ 시카리오의 Fan-made 포스터.
영화 보고나서 이 포스터를 다시 보시면 분명 느낌이 색다를겁니다.
하여튼 암살자와 청부살인업자처럼 한 단어에 두 가지 뜻이 -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그 의미가 다른 - 담긴
sicario라는 스페인어와 같이 영화가 진행됩니다.
캡쳐를 다 안했어서 줄거리를 대략 설명할게요.
에밀리 블런트가 연기한 주인공 케이트는 FBI의 납치전담반 리더로
어느날 유괴된 사람들을 좇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우연찮게 마약 카르텔과 총격전을 벌이게 되고
그들이 납치했던 인질들을 모두 살해한 뒤 벽장에 숨겨두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폭발로 경찰 두명이 희생되기까지 하죠.
이 임무로 상부에 소환된 케이트와 그의 동료 레지(다니엘 칼루야 役). 상부에서는 둘의 이력을 살펴보는데,
누군가가 "변호사는 필요없고 여자만 달라"고 합니다. 그 양반이 CIA 소속의 맷(조쉬 브롤린 役)입니다.
(여기서 변호사는 대학 때 ROTC를 통해 군입대를 했었고, 로스쿨까지 다녔던 똑쟁이 레지를 뜻합니다)
맷은 케이트의 납치사건에서 드러났던 마약조직을 쫓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상부에서는 케이트를 불러 온갖 동기부여란 동기부여는 다 시켜준 뒤에 맷과 함께 카르텔을 소탕하라고 합니다.
맷 또한 케이트에게 처음에는 엘 파소로 가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거라고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케이트가 가게 되는 곳은 엘 파소 옆 동네인 멕시코의 후아레즈.
실제로 구글지도 찾아보니 완전 옆동네긴 합니다...
▲이게 다 같은 나라같죠? 찬찬히 살펴봅시다.
캡쳐 맨 오른쪽의 확대상자 보이시나요?
그 왼쪽으로 구불구불 대각선으로 쭉 올라가는 검은 선이 국경선입니다.
딴소리지만 올라가다 보면 점 찍혀있고 포트 행콕(Fort Hancock)이라 써진 것도 보이시죠?
저기는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앤디 듀플레인이 탈옥 후 레드에게 보낸 편지에 찍혀있던 우편 소인의 '그' 장소입니다.
왜 그래서 레드도 가석방 이후 그 편지를 받고서 앤디를 찾아 포트 행콕 행 버스를 타죠.
하여튼 국경지대라서 구분을 좀 하자면 엘 파소와 포트 행콕은 미국 땅이구요
시우다드 후아레즈는 - 통칭 후아레즈 - 멕시코 땅입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치와와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멕시코의 주 이름이랍니다. (후아레즈는 멕시코의 치와와 주 후아레즈 시)
여기서도 저기서도 왜 그랬느냐 하면 국경지대라는 아주 깊~은 뜻이 담겨있는 동네들이라서입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우리는 미국인도 멕시코인도 아니잖아요?
케이트는 미국애라 그런거라도 좀 눈치챘겠지만, 보는 우리는 케이트보다도 더 모르고서 화면 앞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후아레즈에 들어가자마자 케이트가 보게되는 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시체들
그리고 마약범죄 소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민간인 학살이었습니다.
심지어 임무 수행하는 애가 케이트한테 불꽃놀이 보여준다고 불러서 갔더니만,
그때처럼 어딘가에 심어둔 폭탄이 폭발하는 장면이었고...
레지에게 연락해 데리러 오라고 하는 케이트.
똑똑한 레지는 케이트에게 이건 FBI의 소관이 아닐뿐더러 케이트가 강경하게 이야기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미 이 상황에 길들여져버린 케이트...
케이트의 탓만 할 순 없는 문제이긴 합니다.
케이트맘답게 케이트 대신 강력한 의사표현을 하는 레지.
말로만 필요 없다고 다그쳤지만
사실은 아직 케이트를 이용해먹을 건덕지가 너무 많이 남아있었던 것.
노골적으로 레지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을 하죠.
이들이 레지가 아닌 케이트를 데려간 이유입니다.
똑똑한 레지는 출발 전부터 분명 이런 식으로 문제를 삼을 것이 뻔했으니까요.
이런 말을 남기는데.. 협박처럼 들리는 것은 착각이 아닐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그녀에게 정신적으로 압박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찰나의 이 스몰토크.
레지는 이미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케이트에게 경고하지만,
케이트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장면에서도.. ㅠㅠ 저는 저 암호조차도 이 영화가 말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다를수도 잇겠죠... 작전 중에 흔히 사용되는 암호라던가...
어쨌든 케이트는 레지의 조언대로 이들을 차근차근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스페인어로 떠드는 것을 듣던 와중 레지에게 이 대화를 알아듣겠냐며 확인을 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케이트에게 믿을 사람은 레지뿐이지요.
이들 팀은 케이트를 이용해 SWAT에 병력을 요청하고 작전을 수행하게 되는데
돈을 세탁하려다 도중에 돈만 남기고 도망쳐버린 마피아들.
저 고무줄을 주목해주세요.
이를 본 케이트는 수사 본능으로 범인 검거를 위해 은행에 가려고 하고,
맷은 케이트를 말리지만 ... 케이트는 이미 수상쩍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뒤돌아보지 않고 행동합니다.
은행 안으로 들어간 케이트는 CCTV에 찍혀 얼굴이 노출됩니다.
레지와 케이트는 공식경로로 항의하지만,
이미 이것은 윗선에서 익스큐즈된 일이란 것만 확인했을뿐...
케이트는 힘이 없다.
속상함에 케이트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레지의 친구와 합석하게 되지만
로맨틱한 분위기로 전개될 뻔한 상황에서
돈세탁 때 쓰였던 고무줄을 발견하게 됩니다.
CCTV로 케이트의 얼굴이 노출되었기에 의도적인 접근을 했었던 것.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려는 순간에 나타난.....
엉망진창이 된 케이트를 끝까지 이용하려는 맷.
이 수렁의 끝은 어딘걸까요...
그에 반해 위로를 전하는 알레한드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는 말로 케이트의 기분이 누그러졌을까요.
아니면 직접적으로 구해준 것이 알레한드로이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믿음이 생긴 걸까요.
하여튼 그 사건 이후 케이트와 알레한드로는 조금 가까워집니다.
땅굴을 통해 브라질에 잠입하여 작전을 수행하려는 맷.
왜 알리지 않았냐고 하니 레지에게 하는 말..
결국 FBI 상부와 맷은 다 연결되어 있고...
이제는 레지 앞에서조차 숨기려는 노력도 안 하는 맷.
여정의 끝의 끝까지 와서 알게된 자신의 이용가치.
그리고 이제는 그 가치를 다 했기때문에 먹고 떨어지란다.
허무함과 알수 없는 표정이 동시에 겹치는 케이트의 얼굴...
현명한 레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장을 준비하는 케이트..
케이트의 마음도 한편 이해는 간다...
무엇때문에 날 이용했나
어차피 이 진흙탕에 발을 들여놓은 거라면
같이 봐도 상관없지 않겠는가 하고.
땅굴로 진입하기 전 아름다운 노을..
정말 영화와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케이트와 레지도 결국 따라가지만 레지는 초반에 같은 부대원들에게 제압당해버리고
이내 땅굴을 건너 모든것을 목격한 케이트까지 제압해버린다.
'메데인'이 뭐냐는 케이트의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은,
그저 질서를 되찾기 위한 싸움이었다는 말.
과연 뭘 위한 질서인가?
케이트는 절대로 이런 내용을 알리겠다고 하지만...
그리고 자신과 자기가족들의 복수에 성공하는 알레한드로.
그들의 마지막.
케이트를 보면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는 알레한드로의 말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진다.
정말 소중해서 놓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에게 있어 소중했던 사람들은 자신을 두고 허망하게 떠나버렸기에
그런 의미에서 닮았다고 한 것인지.
알레한드로는 케이트의 입을 막을 수 있을까요.
'시카리오'의 의미에 잘 부합하는 인물은 결국 알레한드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그가 바라던 복수극이 정말 통쾌하고 기분 좋은 일이었는가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그의 복수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알레한드로 역시 어찌 보면 맷과 미국의 장기말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케이트처럼...
모든걸 다 알아버렸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케이트는
어찌보면 영화를 보고있는 나와 다를바 없는 역할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이 이렇지 않을까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하는지 그렇다해서 이것이 해결될것인지
복수와 복수 그리고 복수를 계속 이어가다 보면 결국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는건 아닌지.
오랜만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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